서울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특별전 : 모빌

기획: 조은비 (2011년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참가자)


참여작가: 박주연, 이미래, 파트타임스위트


 2017. 6. 7 ~ 7. 5

오프닝 리셉션: 201767일 오후 6~8 


두산갤러리는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특별전 《모빌 (Mobile)》을 2017 6 7일부터 7 5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지원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으며,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참여했던 기획자들에게 전시기획안을 공모하여 선정된 1인에게 전시기획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선정된 기획자는 2011년에 참여했던 조은비로 잉여, 거주, 젠더, 공동체 등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출발한 고민을 토대로, 새로운 삶의 방식과 조건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미술의 언어로 드러내는 데에 관심을 가져왔다. 《복행술》(케이크갤러리, 2016), 《내/일을 위한 시간》(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2016), 《여기라는 신호》(갤러리 팩토리, 2015), 《아직 모르는 집》(아트 스페이스 풀, 2013), 《파동, The forces behind(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공동기획, 두산갤러리 서울/뉴욕, 2012)을 기획했고, 공동 번역서 『스스로 조직하기』(미디어버스, 2016)를 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특별전 《모빌 (Mobile)

모빌은 움직인다. 바람이나 날숨 혹은 손끝 따위의 외적인 접촉에 의해, 선으로 이어진 개별조각들이 저마다 무게중심을 옮겨가며 전체의 균형을 찾아간다. 말단에 매달린 작은 조각의 미미한 움직임에도 멀리 떨어진 커다란 조각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인 구성원리에 따라 모빌은 단 한 순간도 같은 형태에 머무르지 않는다. 만일 모빌이 제 균형을 찾는다면, 다시 말해 정지한다면, 역설적으로 모빌은 그 형태적 특질을 잃고 말 것이다. 즉 모빌이 모빌(Mobile)이기 위해선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한다. 이때, 빈 공간과 팽팽하게 길항하며 시시각각 변모하는 모빌의 움직임은, 도리어 보이지 않는 세계의 흐름을 지시한다. 그렇게 유동성은 동일성을 파괴하고 시간을 가시화한다.

이 전시에서 '모빌'은 공동체를 상상하는 알레고리로 제시된다. 모빌은 개별조각들의 가시적인 연결만이 아닌 비정형의 움직임을 통해 특유의 미적 형식을 이룬다. 여기서 그 일사불란한 모습은, 지난 겨울부터 올 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현장에서 목격한 혹은 미디어가 재현한 하나의 거대한 스펙터클을 연상시킨다. 이는 동시에 움직이면서도 결코 어느 한 곳을 목적지로 두지 않았다. 모빌의 동선이 단선적일 수 없듯, 성좌의 궤도가 한 점에서 교차하지 않듯이 말이다. 이렇듯 그 움직임이, 합의에 의한 수렴이 아니라 결렬로 인한 발산이었다면, 그럼에도 그 스펙터클을 하나의 공동체로 호명할 수 있을까?

이 전시는 이러한 고민을 토대로 빈 공간과 마주한다. 하나의 전시에서 작가와 기획자 그리고 관객은 전시장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서로 간의 일치감과 단절감을 단속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이들은 그 개별성으로 인해 끊임없이 서로를 반사하고, 각자의 관계와 거리를 설정하고, 상대의 언어를 번역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전시가 이렇듯 쉼 없이 변모하는 유동적인 과정 속에 자리한다면, 이는 그 미적 형식을 통해 어떤  '일치'의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이 전시는 지금 여기에서 움트는 이 새로운 공동의 이미지를, 전시장 안에 모빌처럼 둥실 띄우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전시의 고민을 토대로 참여작가들은 각기 다른 층위로 전시 주제에 접근한 신작을 선보인다. 박주연은 언어 구조의 변형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의 가능성을 실험해왔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기존 작업의 맥락에서 일종의 ‘조각적 글쓰기’를 시도한다. 신작 <접미사, 접다 (Suffix, Silenced)>(2017)는, 혼자서는 기능할 수 없는 ‘접미사’가 하나의 단어가 되기까지의 메커니즘에 주목한 설치작업이다. 접미사는 항상 다른 단어의 어근에 결합하여, 여러 의미를 첨가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말(접미사)은 작가에게 있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낼 가능성, 즉 단어/소리-“되기”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케이블 타이로 연결된 가는 철선들과 조명, 슬라이드 프로젝터의 빛을 반사하는 스틸 거울들, 그리고 이에 따라 변주되는 그림자 등이 한 공간에서 파편화되고 다시 합치하면서, 평면과 입체도형이 형상화된다. 작가에 의하면 이러한 시도는 “문자가 소리를 낼 때, 어두운 몸 안으로 빛과 숨이 스며드는 언어의 풍경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미래의 <지지하고, 미끄럽게 하고, 돌아가고, 전진하다 (Support, Lubricate, Rotate, Climb)>(2017)는 ‘지미집’의 외형에서 착안, 기계 위에 돌아가는 벨트와 그 아래에 매달려서 “전진하는” 오브제를 구조화한 키네틱 설치작업이다. 벨트 아래에 움직이는 오브제는 실제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무한회귀를 반복한다. 이때 콘크리트 무게추에 따라 그 반대편 허공을 지시하는 꼭지점의 “가짜 같은” 느낌은, 작가가 말하는 ‘유사 능동성’의 한 양태이다. 그리고 이는 전시장 바닥에 납작하게 누워 있는 또 다른 신작 <누워있는 사람 (Lying man)>(2017)과 연결된다. 전신의 모든 관절의 각도를 아무리 정밀하게 조정한다 해도 신체는 정확하게 동일한 동작을 반복할 수 없고, 고정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로 인해 이 ‘누워있는 사람’은 전시기간 동안 매일 조금씩 자세를 바꾸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두 작업의 물리적 구성과 운동감의 대립은, 작가의 작업의도와 행위의 지시성을 드러낸다.

파트타임스위트는 일본의 혐한 시위대와 그 카운터 시위대가 서로를 촬영했던 방식 그대로 연인들이 상대방을 촬영한 퍼포먼스 영상작업 (2017)을 선보인다. 작가는 연인들의 모습과 헤이트-카운터 시위대의 대립을 교차시키는데, 연인들이 서로를 촬영하면서 서로의 공간을 비추는 전반부는,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만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카메라의 앵글을 보여주고, 이러한 추측의 시선은, 타자들의 싸움/투쟁 속에 “말과 말이 부딪히고 혀와 혀가 섞이는” 후반부에 이르러 조율과 긴장의 감정을 조성시킨다. 여기에 작가는 혐한 시위가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면서 대중의 정서에 파고든 것에 착안해, 윈도우 갤러리에 적외선(IR), 레이저 조명 등을 활용한 설치작업을 구성함으로써 일상 속 테크놀로지가 현실에 적용되는 방식을 은유한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조명들이 창 안팎을 비추면서 그 상이 유리창이나 관객의 눈에 맺히는 정지의 순간, 빛은 또 다시 서로 간의 거리와 방향을 변경하며 스스로를 가시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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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7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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